-한국과 아시아 넘어 ‘세계 태권도 경영’ 위해 중대한 결단
-양 회장, ATU 회장선거에 출마하는 ‘당위성’ 확보에 주력
-갈수록 ‘양진방 대세론’ 확장, 국내 경쟁 후보 심리적 압박
-“KTA 회장에 재선된 지 몇 개월 만에…” 진솔 사과 필요
-당선되면 한달 안에 사표내야, 일각 “사표 내고 출마하라”
서성원 기자 / tkdssw@naver.com
‘주사위’는 던져졌다. 고심은 길고 깊었지만, ‘출마 결심’은 예정된 것이었다.
양진방 대한태권도협회(KTA) 회장이 장고(長考) 끝에 오는 7월 하순 치러지는 아시아태권도연맹(ATU) 회장선거에 출마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양 회장은 4월 8일 대전에서 열린 시도태권도협회 회장들과의 간담회에서 현안을 모두 논의한 후 ATU 회장선거 출마를 공식화했다.
양 회장의 출마 선언에 박경환 전남협회장과 김화영 울산협회장, 김평 경기도협회장, 고봉수 전북협회장 등은 “종주국 태권도의 위상과 세계 태권도 발전을 위해 출마한다면 응원하겠다. 당선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박수를 치며 응원했다.
이 과정이 출마를 위한 형식적 명분쌓기와 모종의 절차든 간에 담대한 의지와 기세를 모아 ‘출정식’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로써 양 회장은 아시아 태권도의 리더가 되기 위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 시쳇말로 ‘낙장불입(落張不入)’, 이미 바닥에 내놓은 패를 다시 집어 들 수 없게 됐다.
이젠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지난 4월 3일 이규석 ATU 회장이 소집한 자리에서 한국인 예비 후보자 간에 타협과 협의가 안 된 상황에서, 3명(김상진-양진방-정국현)의 예비 후보자 간의 ‘합의(단일화)’는 힘들어졌다. 물론 외국인이 출마한다면, 다시 협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세-정무적 감각과 개인적 역량으로 먼저 치고 나가는 양 회장의 행보가 예사롭지 읺다. 그를 지지하는 쪽에선 “양 회장의 의지와 기세를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국내외 누가 나오든 승세는 끝났다”며 당선을 자신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12월 KTA 회장에 재선된 후 양 회장은 자신의 진로를 놓고 심사숙고했다. 그 과정에서 타이밍을 놓쳐 ‘아차’했을 수도 있고, KTA 회장을 넘어 아시아 태권도계 수장(首長)이 되어야만 하는 명분과 당위(當爲)를 확보하기 위해 잠도 설쳤으리라. “요 근래 (내 진로를 놓고) 태권도 인생에서 가장 많이 고심을 했다”는 양 회장의 말이 진심처럼 느껴진다.
양 회장의 출마 결심이 전해지자 지난해 12월 KTA 회장선거에서 그를 지지했던 일부 사람들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불만의 핵심을 종합해 보면, “(오는 7월) ATU 회장선거에 출마할거면 왜 지난해 12월 KTA 회장선거에 출마했느냐”, “(올해 1월부터) 회장직을 수행한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ATU 회장선거에 출마하는 것이 도리에 맞는 것이냐”, “회장 개인의 야심과 권력욕이 불필요한 혼란과 사회적 비용을 초래했다”로 요약할 수 있다.
이 같은 지적과 비판에 대해 양 회장은 애써 비굴하게 부인도 반박도 해명도 하지 않고 있다. 자칫하면 반박과 해명이 궁색해 보일 수 있고, 또 다른 논란을 증폭시키기보다는 “(주위 사람들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비판을 이해한다”며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양 회장은 자신을 향한 비판을 의식한 듯 “지난해 KTA 회장선거를 준비할 때와 현재는 선거를 둘러싼 규정과 세계 태권도계의 흐름이 많이 달라졌다”며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 자신을 향한 야심과 권력욕에 대해선 “내 개인의 욕심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그것은 종주국 태권도의 위상을 강화하고, 아시아를 넘어 세계 태권도계의 주도권을 유럽 등 외국에게 넘겨주지 않으려면 ATU 회장을 해야만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본의(本意)’는 무엇일까. 양 회장의 마음과 입장을 종합해 풀이해 보자. 이 안에는 단순히 태권도 경기단체인 KTA와 WT뿐만 아니라 복잡다난하고 미묘한 ‘세계 태권도 흐름’이 담겨 있다. 당연히 국기원 역할과 한계, 그 과제를 극복하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양 회장의 입장에서 보자.
(1)오는 10월 세계태권도연맹(WT) 선거에서 조정원 총재가 또 선출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다. 규정상 더 할 수 없다. 임기 4년 후 2029년이 되면 다른 사람이 총재가 되어야 한다.
(2)그런데, 4년 후에 한국인이 총재가 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WT 산하 5개 대륙태권도연맹 중에서 유럽과 팬암연맹이 손을 맞잡으면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연맹은 저절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3)그럼 아시아만 남게 된다. 오랫동안 아시아 태권도계를 이끌어온 이규석 ATU 회장은 ‘레전드(legend)’로 남고, 새로운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 ATU 회장이 되어야 한다. 새 회장은 유럽과 팬암 등 대륙연맹을 견제하고 리드하면서 한국인이 주도하는 흐름을 계속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4)특히 오는 10월 WT 선거에서 양 회장이 선출직 부총재(3명+여성 1명)가 되기 위해선 그 전에 대륙연맹인 ATU 회장이 되어야 한다. 하나의 회원국인 KTA 회장만으로는 WT 선출직 부총재를 장담할 수 없고 역부족일 수 있다.
(5)따라서 영어로 소통하고 세계 태권도계의 흐름을 꿰뚫고 있는 양 회장이 ATU 회장이 되고, 그것을 발판으로 WT 선출직 부총재가 되어 조정원 총재를 보좌하면서 4년 후를 대비해야 한다. 그것이 종주국 태권도의 위상을 강화하고, 유럽과 팬암 등 외국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는 길이다.
양 회장이 추구하는 길은 정해져 있다. KTA 회장
ATU 회장
WT 부총재
WT 총재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도전이든 야심이든 험로든 간에, 주사위는 던져졌다.
한편 오는 7월 하순 치러지는 ATU 회장선거에서 당선되면, 규정상 겸직을 할 수 없어 한 달 안에 KTA 회장직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오는 10월 KTA 회장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당락과 상관없이 사표를 내고 출마하라고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