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 중순 말레이시아에서 치러지는 아시아태권도연맹(ATU) 회장선거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한국 예비 후보자들의 행보와 야심이 꼴불견이라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ATU 회장선거 출마 여부를 놓고 이미 마음을 굳혔거나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한국인은 3명. 양진방 ATU 부회장(대한태권도협회 회장), 김상진 ATU 부회장(대한태권도협회 부회장 수락), 정국현 ATU 집행위원(태권도진흥재단 전 사무총장)이다.
3명 중 가장 먼저 출마를 기정사실화한 것은 김상진 ATU 부회장이다. 그는 지난 1월 18일 가천대에서 열린 ATU 기술위원회 위촉식에서 단상에 올라 “ATU를 명실공히 5개 대륙연맹의 선두주자로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부분을 새롭게 개혁해 가면서 발전해 나가야 하는 것에 고뇌가 많다”며 “ATU 발전을 위해 경영 전략을 세우고, 때론 사재를 출연하면서 ATU 본부 이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난 25일 부산광역시태권도협회 회장 이·취임식에서 “ATU 발전을 위해 경영 전략을 위한 마스트 플랜을 세워가고 있다. 앞으로 ATU 본부 이전 문제와 회원국 품새 보급, 아시아 저개발 국가 지원 등 다각적인 프로모션에 대해 의견들을 나누고 있다”고 말해, 출마 의지를 강하게 표명했다.
양진방 ATU 부회장은 4년 전부터 ATU 회장에 관심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규석 회장이 “한 번 더 회장을 하겠다”는 의지에 따라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런 흐름 속에서 김상진 부회장이 먼저 치고 나갔다. 지난해 초부터 이규석 회장의 마음(李心)을 등에 업고 회장출마를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 것. 국내외 여러 곳에서 이 회장이 김 부회장에게 길을 터주고 입지를 닦아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처럼 ATU 회장선거를 둘러싸고 김 부회장에게 유리한 구도가 형성되자 위기감을 느낀 양진방 부회장과 정국현 집행위원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김 부회장에게 견제구를 날리며 자신을 중심으로 새판을 짜야 한다는 전환점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ATU의 규정상, 한 나라에서 여러 명이 출마할 수 있다. 따라서 양진방·김상진·정국현 모두 한국 국적으로 출마가 가능하다.
하지만 국내 태권도 단체장 선거가 아닌 아시아 태권도 리더를 뽑는 ATU 회장선거에 한국인 2∼3명이 출마하는 것은 명분도 없고 모양새도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후보자가 출마할 경우, 표가 분산되어 당선을 헌납하는 자충수를 둘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3명의 한국인 예비 후보자들이 합의하고 조율해 한 명이 최종적으로 입후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이에 관련, ATU의 한 관계자는 “이규석 회장은 3명이 합의해 한 명이 출마하는 것으로 정해지면, 그 사람이 당선되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부회장은 3월 10일 <태권박스미디어>와 통화에서 “작년부터 (ATU 회장선거와 관련) 나를 지명하는 바람에 내가 대답을 했고 (…) 이규석 회장님이 출마하라고 해서 답을 했기 때문에…”라고 말해, “3명이 합의해 한 명이 정해지면 도와줄 것”이라는 예측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김 부회장의 이 같은 말과 관련, 양 부회장과 정 집행위원은 “이규석 회장이 출마하라고 지명했다”고 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이 회장의 ‘배경’을 등에 업고 출마하는 것이 얼마나 경쟁력이 있겠느냐는 쓴소리도 있다.
출마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 양 부회장의 가장 큰 부담은 지난해 12월 대한태권도협회(KTA) 회장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후 몇 개월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ATU 회장에 출마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에 대한 도리가 아닐 뿐만 아니라 명분적인 측면도 궁색하다.
이와 함께 이미 출마 결심을 굳힌 김 부회장과 출마 의지를 접지 않은 정 집행위원과 어떻게 합의점을 도출해낼 것인지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양 부회장은 자신을 향한 비판을 수용하고 부담을 감내하면서 출마 의지를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3월 16일 “지난해 12월 KTA 회장선거 전과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며 ATU 회장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탐욕’과 ‘권력 욕심’으로 치부하는 시선을 경계했다.
시대 흐름에 맞는 아시아태권도연맹의 올바른 리더십을 구축하고,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 총재가 퇴임하는 2029년 이후 한국 주도의 세계 태권도 네트워크를 이어가려면 경쟁력을 갖춘 자신이 ATU 회장이 되어야 한다는 게 양 부회장의 소신이다. 통역 없이 외국인과 자유롭게 영어로 대화와 발표를 할 수 있고, 세계 태권도의 저변을 꿰뚫고 있는 자신이 ATU 회장의 적임자라는 것.
ATU와 WT 집행위원을 선출되어 활동하고 있는 정국현 집행위원도 출마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그는 3월 21일 <태권박스미디어>와 통화에서 “한국인 3명이 출마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어서 강하게 출마하겠다고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나는 기본적으로 한국인이 여러 명 출마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합의를 하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최종적으로 합의가 안 되면 출마해야지…”라고 여운을 남겼다.
한편 양 부회장이 출마해 ATU 회장에 당선되면 규정상 한 달 이내에 KTA 회장직을 그만둬야 하기 때문에 재선거를 해야 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ATU 회장선거에 출마한다면, 당락과 상관없이 사표를 내는 것이 도리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