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대한태권도협회 양진방 회장이 진천선수촌에서 훈련중인 국가대표 선수단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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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 의한 ‘회전문 인사’, ‘부적합 인사’는 청산해야
-세대교체 바람 속 구차하게 권력에 줄대는 것 비굴
-수십년 활동했던 곳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자세 필요

아니나 다를까. 예상은 적중했다.

연임에 성공한 대한태권도협회(KTA) 양진방 회장 2기 체제가 출범도 하기 전에 온갖 청탁과 추천, 줄대기 등이 횡행하고 있다. 양 회장에게 직접 부탁하는 경우도 있지만, 양 회장을 둘러싼 사람들에게도 청탁과 줄대기가 이뤄져 아연실색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그 분야(자리)의 적임자로 평가받을 수 있는 사람을 추천하는 것을 두고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청탁과 추천에 의한 임명은 대체로 부적절한 사례가 많은데다 청탁과 관련된 사람들의 대부분이 자질과 역량이 부족한, 시쳇말로 ‘깜냥’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태권도 제도권, 특히 KTA를 둘러싸고 집행부 임원과 기능 전문직(기술위원회 임원)을 교체하고 임명할 시기가 되면 청탁과 추천 등이 무분별하게 횡행했고, 현재도 그렇다. 이런 퇴행적인 악순환 고리는 이제 끊어야 한다.

KTA ‘권력 지배구조(Power Governance)’를 보면, 특정 계파와 특정 인물들이 오랫동안 권력을 행사하는 ‘권력의 카르텔’을 형성해 그 안에서 그들만의 ‘회전문 인사’가 이뤄지고, 임기가 끝났거나 집행부가 교체되었어도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며 여러 직책(보직)을 맡곤 했다.

살펴보자. KTA 현장 조직의 핵심인 기술위원회는 겨루기·품새·격파 등 각 세부종목은 1명의 의장과 3∼5명의 부의장 체제 속에 경기·심판·기록·질서분과위원회가 있다. 의장 아래 부의장은 일종의 ‘전관예우’처럼 회장과 사무총장, 의장과의 관계에 따라 자리가 주어졌다.

각 분과의 위원장과 부위원장도 이 같은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자질과 전문성보다는 ‘제도권의 거래’, 즉 청탁과 추천 등 정실(情實)에 의해 임명되곤 했다.

이제 퇴행적인 ‘인사 임명 구조’를 바꿀 때가 됐다. 주요 직책(자리)는 공개모집(공모)를 통해 심사를 거쳐 임명하고, 청탁과 추천을 무분별하게 하는 풍토는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 30년 가까이 KTA 언저리를 맴돌며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며 ‘완장’을 찼던 사람들은 흘러가는 세월 앞에, 또 세대교체 바람 속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준비를 해야 한다. 태권도 제도권에서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들이 일선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태권도 발전에 저해되거나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물꼬의 순환작용이 될 것이다.

60대 중반이 되었어도 건강하기 때문에, 또 누구보다도 그 분야의 전문성을 갖췄다며 수십 년 활동했던 제도권과 현장에서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제도권에서 멀어지는 순간, 자신의 존재 가치는 사라져 태권도 생(生)이 끝난다고 여길 수도 있다.

시인 마리 로랑생은 이렇게 읊었다. 괴로움보다 심한 것은 버림받는 것이고, 죽기보다 더 아픈 건 잊혀지는 것이라고. ‘잊혀진다는 것’은 고통일 수도 있다. 이러한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아 줄대기와 줄서기를 하면서 권력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하면 더 추해질 뿐이다.

그래도 어쩌랴. 흐르는 세월과 시대의 순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오랫동안 제도권의 요직에서, 또 그 언저리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은 이제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 스스로 물러나는 것, 그리고 박수칠 때 물러나는 것이 그나마 남은 자존심과 존재감을 지키는 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