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권도 품새 전문가들에게 묻다
태권도 유급자 품새인 <태극 7장>에는 손날 아래막기, 바탕손 거들어막기, 보주먹 가위막기, 무릎치기, 몸통 헤쳐막기, 엇걸어 아래막기, 표적치기, 범서기 등 다양한 동작이 나온다.
그 중에서 ‘보주먹’의 풀이와 기능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품새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국기원 교본에 보주먹에 대한 풀이가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아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보주먹’은 모아서기 상태에서 두 손을 단전(丹田) 앞에서 천천히 코와 윗입술 사이 인중(人中) 높이로 끌어 올리면서 주먹을 쥔 오른손을 왼손이 살며시 감싸는 동작이다. 영어로는 ‘ hand covered fist’, ‘covering fist’라고 표기한다.
2019년 4월, 이송학 사범(국기원 사범연수 품새 강사)은 한국여성태권도연맹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예전에 원로들 중에는 보주먹의 ‘보’를 ‘포대기 보(褓)’라고 가르쳤지만, 무술과의 연계성에서 보면 ‘지킬 보(保)’가 맞다. 주먹으로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고 화해를 하겠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무술영화를 보면 ‘보주먹’을 하면서 상대방에게 ‘예(禮)’를 표하는데, 그 속에는 겸손과 겸양, 존중과 배려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풀이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뜻을 보탰다.
“보주먹 용어는 무술 관점에서 볼 때, 5개 구간의 상대 공격을 팔목이 아닌 손으로 막아내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나의 실력을 보여준 다음, 강력한 무기인 주먹을 지키며(보호하며) 이제 싸움을 그치자는 예법의 뜻으로 해석된다. 보주먹 이후의 기법은 이전과 다르게 거대한 산처럼 웅장하게 이뤄지는데, 가위막기로 상대의 팔을 부러뜨리고 머리를 잡아 당겨 얼굴을 무릎치기로 강하게 공격하고 (…) 보주먹 이전의 기법은 손을 상징하고 이후는 웅장한 산을 상징하는데, 이는 태극7장이 팔괘사상의 간 사상(손과 산을 의미)과 맥을 같이 한다.”
서영애 사범(세계품새선수권대회 금메달 9개 획득)은 지난해 5월 태권도원에서 열린 3급 사범연수에서 유급자 품새를 강의하며 “보주먹은 누구를 공격하거나 방어하는 동작이 아니다. 운동 기능 측면에서 호흡을 정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9년 4월 22일 보주먹에 대해 묻자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품새를 수행할 때 속도는 빠르게 또는 서서히(느리게) 하는 두 가지이다. 미는 동작을 제외하고 실제 공격과 방어를 느리게 한다면 말이 안 된다. 느리게 하는 동작 중 태극6장 헤쳐 내려막기, 태극7장 보주먹, 유단자 고려 메주먹 표적치기 등의 동작은 힘을 주지 않고 서서히 하면서 호흡을 정리하는 기능을 한다. 보주먹에 대한 내면적 해석은 강익필 사범과 거의 일치한다.”
그렇다면 강익필 사범(국기원 품새 강사)은 보주먹을 어떻게 풀이할까.
“인중 높이에서 보주먹을 하는 것은 공방(攻防)의 의미가 없다”고 전제한 강 사범은 “보주먹을 음양(陰陽) 측면에서 설명하면, 기(氣)의 흐름을 연결하고 마음을 정돈하며 호흡을 조절하는 동작으로 보면 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주먹은 하단전의 중심과 하단전 주변의 힘을 통합하기 위한 (준비)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전·후·좌·우 또는 사선(빗금) 방향으로 힘의 통로를 정렬해야 하단전의 기운이 마치 물 흐르 듯이 통하기 때문이다. 왼손(양)으로 오른 주먹(음)을 감싸는데, 힘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왼손으로 오른 주먹을 감사면 몸의 기운이 몸 바깥으로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순환의 고리를 만들게 된다. 외형적인 동작 이외 호흡의 관점에서 보면, 보주먹 자세는 앞의 기본준비-겹손준비-두주먹 허리준비 자세를 통해서 정렬시킨 힘의 통로를 하단전의 입체 영역과 함께 안과 밖을 하나의 포괄적인 묶음으로 만들기 위한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보주먹 의미 속에는 겸손과 겸양, 존중과 배려의 의미가 있다”고 말한 이송학 사범의 해석에 대해 “보주먹을 확대 해석하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전 태권도’를 지향하고 있는 이동희 사범(이동희태권도 관장)은 “보주먹을 배울 때 ‘무엇이다’라고 배운 것이 없다”며 이렇게 소신을 밝혔다.
“태권도 기술에서 보주먹이 나온다. 말 그대로 준비동작이기 때문에 품새 중간에 마음을 가다듬고 기운을 갈무리해서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보주먹은 모아서기에서 하기 때문에 공격이나 방어를 하기엔 적합하지 않다. 보주먹을 준비동작에서 해석하면, 태권도 호흡은 단전(아랫배)에서 하고 동작의 힘도 이 곳에서 나온다. 이는 호흡을 통해 가능한데, 보주먹이 아랫배 앞에서 시작해 앞으로 뻗어지는 동작을 통해 호흡을 모아 동작을 발출하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준비동작을 통해 앞으로 진행될 동작들도 같은 힘의 원리로 수행하는 것을 준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요즘 품새를 과학적으로 지도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이기철 사범(고비원주태권도 총관장)은 “보주먹의 ‘보’는 감싸거나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다. 보주먹은 품새 중간에 할 수 있는 특수 품서기 중 하나”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특수 품서기란 기본준비서기, 통밀기 준비서기, 겹손 준비서기, 보주먹 준비서기, 두주먹 허리준비서기 5가기를 말한다. 목적은 호흡을 가다듬고 기를 모아서 정신을 집중시킨 후 다음 동작을 대비하기 위한 동작이다. 그러므로 동작을 취했을 때 눈빛이 빛나고 자신감, 품위, 당당함 등이 드러나야 하며, 오감(五感)을 최대한 집중시킬 수 있어야 한다. 아귀손을 준 왼손(음)과 주먹을 쥔 오른손(양)의 간격은 종이 한 장 정도 유지하고, 왼손의 손가락이 열리거나 오른주먹을 꽉 잡으면 안 되고, 손목이 꺾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호흡은 한 호흡이므로 5초 정도로 한다. 호흡의 길이와 동작의 크기가 같아야 하고, 두 손의 힘과 아랫배의 힘도 같아야 한다.”
한편 1987년 국기원이 한글학자들의 자문을 얻어 ‘품세(品勢)’를 순우리말 ‘품새’로 바꾼 것에 대해, 무술의 특질과 변용을 간과해 동작의 확장성이 어렵고, ‘품’과 ‘새’의 뜻이 중복된다며 ‘품세’로 되돌려야 한다는 움직임이 여전하다. <서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