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태권도협회(KTA)와 공정거래위원회가 미등록 태권도장 승품단 심사 정례화를 합의했다. 각 시도협회에서도 등록 회원 도장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치러지는 정규심사와 마찬가지로 미등록 태권도장의 정례 심사 일정도 통합 공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각 시도협회 심사시행 현장에서 등록 태권도장과의 역차별 문제, 눈덩이처럼 불어날 심사비 원가계산 문제 등으로 미등록 도장 정례 심사가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기원 승품단 심사 장면(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
지난 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보도자료를 통해 미등록 태권도장에 대한 승품단 심사 정례화 및 통합 일정 공지를 KTA와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합의는 현재까지 구두 합의며, 17개 시도협회와도 KTA가 사전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난해 전국 등록신고 체육시설업 현황에 따르면 태권도장 신고사업자 수는 10,298개, 등록도장 수는 9,890개, 그리고 미등록도장은 208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이와 관련, 서울시태권도협회의 회원등록 거절 행위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태권도장들이 시도협회에 등록해야만 승품단 심사를 받을 수 있음을 확인한 바 있어 KTA와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또, KTA가 원칙적으로 모든 태권도장들이 승품단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실제 미등록 도장들이 심사에 응심하는 비정규심사의 경우 지난 2016년 12월 3일 이후 한 차례도 실시된 바 없어 시도협회에 회원으로 등록된 도장들과의 경쟁에서 불공정행위가 유발되거나 소비자 후생을 저해할 우려가 있어 이같이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KTA와 공정위는 미등록 도장 수련생들도 승품단 심사에 응시할 수 있도록 모든 심사를 정례화 하기로 합의했으며, 일정도 통합 공지할 것이라고 알렸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정규심사도 특별심사로 개최되고 있는 만큼 미등록 도장의 심사 개최 방식이나 횟수 등 세부사항은 단계적으로 결정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이번 합의로 등록 도장과 미등록 도장 간 경쟁이 촉진되고, 수련생과 학부모에 대한 서비스가 제고되는 등 소비자 후생이 증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미등록 도장이 각 시도협회 일정 통합공지에 따른 정례화된 심사에 참여, 실제 미등록 도장 심사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우선, 미등록 도장 정례 심사는 심사비 원가계산에 관한 문제가 불거진다. 이로부터 시도협회 등록 회원 도장에 대한 역차별 문제와 회원의 보호 문제가 발생한다.
가령, 정규 집단심사를 기준으로 모 시도가 내년 3월경 1차 정규심사를 보고, 여기에 미등록 도장 심사 일정을 사전에 통합 공지해 같은 달 심사를 본다고 가정할 경우 심사비 원가계산에서 벽에 부딪힌다.
국기원 심사발급수수료, KTA 심사추천수수료는 동일하지만 시도협회가 해당 지역 내 미등록 도장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정례화된 심사를 개최할 경우 심사집행수수료의 원가계산은 천차만별이 될 공산이 크다.
시도협회 등록 회원 수련생을 대상으로 여는 정기 집단심사와 같은 날 미등록 도장 심사를 개최하면서 동일한 심사집행수수료를 징수하면 등록 도장 입장에서 역차별 문제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별도의 일정을 잡아 소수의 미등록 도장 수련생을 대상으로 심사를 개최하면 대관비, 인건비 등과 관련해 수혜자 부담 원칙에 따라 응심자 1인당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의 심사비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월경 심사 등을 통해 그동안 실제 심사에 참여해왔던 미등록 도장으로서는 해당 지역에서 개최되는 정례화된 미등록 도장 심사에 참여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매우 낮다.
KTA든 시도협회든 역차별을 발생시키지 않는 회원의 보호 문제가 발생하고, 미등록 도장은 등록 도장 수련생의 응심 비용과 수 배 혹은 수십 배의 차이가 나는 심사에 굳이 차별을 겪으면서 신청할 필요가 없다. 지금처럼 타시도에서 ID를 빌려 심사에 응심하면 된다.
미등록 도장의 정례 심사가 가능한 경우는 월등한 자본력을 갖춘 도장 혹은 수련생의 학부모가 1인당 수십만 원 혹은 수백만 원의 심사비를 내고서라도 일종의 ‘황제 심사’를 지향하거나 혹은 시도협회 내 전 등록도장이 역차별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미등록 도장의 심사를 정규심사에서 동일한 심사비로 징수하는 것을 수용하는 경우로 국한된다. 그나마 이마저도 비용 문제 외에 합격률 등과 같은 다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남는다.
그렇다면, KTA와 공정위는 왜 이 같은 합의를 했을까?
바로 형식적인, 그리고 행정적인 제한 행위의 폐지다. 미등록 도장의 정례화된 심사 시행이 실효성이 없다 하더라도 형식적 측면에서 불공정행위가 유발될 수 있다고 보이는 제한 요소를 행정적 측면에서 제거해 눈 가리고 아웅하겠다는 것이다.
KTA나 시도협회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 같은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큰 반발 없이 이를 수용한 것이고,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이 같은 내용을 모를 리 없지만 제한 행위 폐지라는 전시행정 측면에서 이를 강제한 것이다.
어쨌든 KTA와 공정위가 이를 합의했기 때문에 KTA는 조만간 심사 관련 규정 및 규칙을 개정할 계획이다.
다만, 시도협회 등록 회원 도장의 근본적 문제와 이에 연계된 국기원 심사추천 ID 문제, 자율적 월경심사 문제 등의 보다 근원적 숙제는 그대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