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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천택 국기원 이사.

    ‘발 펜싱’ 같은 경기에 실망한 성난 민심이 ‘태권도 경기의 리셋’을 요구하며 분출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리셋(reset)의 사전적 의미는 특정한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을 말한다. 무엇이 잘못 자리 잡았기에 리셋을 해야 한다는 것인가? 전자호구 도입 이전의 경기 체제로 돌아가자는 뜻으로 읽힌다. 

    개선한 전자호구를 보조수단으로 심판이 주도하는 경기로 리셋할 것을 제안한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이 치열하던 1950년대 중반, 소련이 미국을 앞질러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을 1957년 10월에 발사하였다. 이에 대한 미국의 선택은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asic)”는 것이었다. 지금은 미국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주 경쟁에서 소련을 앞서고 있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기술적으로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감상할 수 있었던 전자호구 도입 이전의 체제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야 한다. 태권도의 무예 특성과 스포츠의 재미 특성이 조화를 이룬 가운데, 화려한 발 기술이 다채롭게 발휘되는 재미있는 태권도 경기로 리셋해야 한다. 

    태권도가 올림픽 핵심종목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고, 경기 태권도와 무예 태권도가 분리 발전해야 한다는 냉소 섞인 주장은 태권도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올림픽 스포츠이면서 무예적 특성을 잘 지키고 있는 종목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발생학적으로 놀이(play)에서 발전한 스포츠와 격투(fighting)에서 발전한 무예로 분류할 수 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무예에 스포츠의 재미 요소가 더해져 무예 스포츠로 발전한 운동이 태권도이다. 

    태권도는 발생학적으로 스포츠와 다르므로 그에 따른 본질적 가치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이는 무예의 본질적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경기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2020 도쿄올림픽 태권도 경기 장면.

    도쿄올림픽에서 득점으로 인정했던 주요 기술들을 태권도 기술의 목표로 삼아 일선 도장에서 가르칠 수 있겠는가? 그런 발차기를 펜싱 경기에 빗대어 ‘발 펜싱’ 비난을 하고 있지만 정작 펜싱은 찌르고 베는 기술만 득점으로 인정하고, 스치는 기술은 득점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태권도의 핵심 기술은 주먹으로 지르고 발로 차는 기술이다. 격투에서 발전한 무예 스포츠이므로 상대의 허점인 급소를 일정 수준 이상의 충격으로 지르거나 찼을 때에만 득점으로 인정하는 것이 태권도 경기의 기본 가정이요, 핵심이다.   

    관중들은 스포츠 경기규칙 내에서 다양하고 화려한 무예 기술이 발휘되는 태권도 경기를 보고 싶어 한다. 축구, 농구 등과 같은 스포츠와는 다른 기대로 태권도 경기를 감상하기 때문이다. 

    공격 목표의 난이도에 따른 차등점수제로 하든 균등점수제로 하던 정확한 차기와 지르기로 지정한 목표를 타격할 때에만 득점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경기규정을 개정해야 하며, 그 범위를 넘어서는 어떤 경기규정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올림픽 스포츠로 살아남기 위해 공정성 확보 차원에서 전자호구의 도입이 불가피하였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크게 다를 수 있다. 

    올림픽 스포츠의 선정 기준은 대중성, 수익성, 공정성이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대중성이다. 세계 210여 개국에서 1억 5천만 명이 수련하고 있는 태권도를 올림픽에서 퇴출하는 것은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2020 도쿄올림픽 태권도 경기 장면.

    공정성은 올림픽 스포츠로 인정받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퇴출의 주요 조건이 될 수는 없다.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며 전자호구를 도입하고, 무예성을 상실한 기술을 득점으로 인정하는 경기규정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 

    태권도 경기의 공정성 시비에 따른 전자호구 도입은 모 대학의 ‘R’ 교수가 지적했듯이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그는 “엉터리 판정들이 난무했고 전횡과 정치가 만들어낸 잘못된 판정 때문에 퇴출 위기에 놓였다.  탐욕과 정치가 승자를 결정하는 작태에 IOC는 공정한 전자호구 채점 시스템을 도입하게 하였다”고 꼬집어 비판하였다.     

    태권도 경기의 공정성 문제를 전자호구의 도입이라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해결한 것을 개탄스럽게 생각하는 지도자들이 적지 않다. 전자호구를 도입하기 전까지는 판정 시비와 공정성 문제가 가끔 제기되기는 하였지만 타 무술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화려한 기술이 개발되어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심판의 자질 향상과 처우 개선을 통해 공정성 문제를 해결하며, 기술 발전을 꾀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기 그지없다. 개탄스럽게도 서로에 대한 불신과 책임 전가로 전자호구를 도입하였고, 그로 인해 태권도의 기술발전은 지체되고 경기는 재미를 잃었다. 

    때늦은 반성을 하며 전자호구 도입 이전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분위기를 반전시키지 못하고 ‘발 펜싱’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전자호구 도입 전까지는 태권도의 다양한 기술을 고강도 훈련으로 숙련해야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으며, 선수들은 경쟁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기존 기술의 완성도를 크게 높여 경기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어 태권도 경기에 박진감을 더하고 태권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런데 전자호구 도입 세대는 태권도의 다채로운 기술을 연마하는 대신 전자호구에 적합한 득점 기술을 훈련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결국,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꼴이다. 

    공정성을 확보하여 올림픽 핵심종목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이 태권도의 본질을 훼손하고 변질되는 기현상을 낳으며 태권도 기술의 퇴보를 자초하고 있다. 

    2020 도쿄올림픽 태권도 경기 장면.

    도쿄올림픽의 ‘발 펜싱’ 비난을 기회로 다른 무예 스포츠와 비교할 수 없는 현란한 발놀림과 화려한 발 기술이 다채롭게 발휘되는 심판 주도의 태권도 경기로 회귀할 것을 제안한다. 

    심판의 권위를 높이고,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하면 전자호구 이상의 공정한 경기 운영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판정시비가 있는 득점은 영상판독을 제한적으로 신청하도록 하고, 비디오 판독으로 점수를 조정하면 될 일이다.        

    도쿄올림픽 직후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국기원 원장,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이 향후 대책에 대해 논의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떤 대책을 논의하였는지 궁금하다. 그동안 수많은 비판 아우성과 비난의 화살을 외면해 왔기에 궁금하고, 또 걱정이 되는 것이다. 

    도쿄올림픽이 4+1로 5년 만에 개최됨에 따라 파리 대회까지는 3년밖에 남지 않았다. 

    전자호구의 신비에서 벗어난 심판 주도의 경기로, 태권도의 다채로운 기술이 무한 발휘되는 재미있는 경기로 리셋하는 과업을 지체없이 추진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

    손천택 국기원 이사  tkdnews@korea.com

    <저작권자 © 태권도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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