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올림픽 태권도경기에서 한국은 사상 첫 올림픽 ‘노골드’를 기록했다. 반면 세계 태권도는 “국제 스포츠계에서 주변부에 머물렀던 나라들에 가장 관대한 스포츠”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태권도신문은 도쿄올림픽을 통해 태권도 세계화의 명암과 한국 태권도의 딜레마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명(明) 스포츠 약소국에 관대한 세계화된 태권도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메세 A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태권도경기에는 올림픽 난민팀과 61개국에서 131명의 선수가 참가했고, 참가국 중 북마케도니아, 아일랜드, 에티오피아가 올림픽 태권도경기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는 총 63개국에서 128명의 선수가 출전한 바 있다.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가 국제심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장면. |
남녀 각 네 체급, 총 8개 체급의 경기가 지난 24일부터 나흘간 치러졌고, 총 21개 국가에서 메달을 획득했다. 러시아가 금 2, 은 1개,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가 금 1, 동 1개, 그리고 이탈리아, 우즈벡키스탄, 태국, 미국이 금 1개씩을 챙겼다.
러시아는 사상 첫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 2개, 크로아티아와 우즈베키스탄, 태국은 1개의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미국은 여자부 첫 금메달을 가져갔다. 여기에 첫 출전한 북마케도니아가 은메달을 획득해 눈길을 끌었다.
뉴욕타임즈는 태권도경기 이틀째인 지난 25일 "모든 올림픽 이벤트 중 태권도는 국제 스포츠계 주변부에 머물렀던 나라들에 가장 관대한 스포츠"라며 니제르와 같은 최빈국의 태권도 보급과 요르단의 아즈락 난민캠프를 비롯한 터키, 르완자, 지부티의 난민캠프의 태권도 수련, 그리고 올림픽 태권도에 출전한 난민 선수들을 소개했다.
미국에서 첫 여자 태권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배출된 날이기도 한 그날 뉴욕타임즈는 태권도가 스포츠 약소국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주목했고, 가난한 국가에서 태권도 수련의 접근성이 용이함을 전했다.
올림픽헌장은 그 이념의 기본 원칙에 “인간의 존엄성 보존을 추구하는 평화로운 사회 건설을 도모하기 위해 스포츠를 통해 조화로운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라고 목표를 명시하고 있다. 또 “모든 인간은 어떠한 차별 없이 올림픽 정신 안에서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되어 있으며, “인종, 피부색, 성별, 성적지향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 의견, 민족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기타 신분 등 어떠한 종류의 차별없이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한다”고 쓰여 있다.
모든 스포츠가 올림픽 이념의 보편성에 부합해야 하지만 태권도는 특히, 세계태권도연맹(WT)의 태권도박애재단 등의 활동을 통해 그 역할을 모색해 왔고, 유의미한 평가를 받고 있다.
2020 도쿄올림픽 남자 -58kg급 시상식 장면. |
도쿄올림픽 태권도경기에서 한국의 노골드, 해외 선수들의 발 펜싱 등에 대한 국내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한국은 졌지만 올림픽 정신을 구현한 태권도는 승리했다는 평가와 함께 올림픽 정식종목 퇴출은 이제 걱정없다는 반응들도 온라인 상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부분들은 형식적으로, 그리고 양적으로 태권도 세계화의 밝은 부분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 밝은 부분이 스포츠 태권도의 내용과 질적 측면의 그림자를 가려줄 수는 없다.
암(暗) 전자호구와 앞발, 발바닥으로 수렴되는 스포츠 태권도
도쿄올림픽 태권도경기에서 또 드러난 스포츠 태권도의 내용적 어두움은 경기와 득점의 패턴으로부터 비롯된다. 결국 전자호구에 관한 얘기로 귀결된다.
‘발 펜싱’으로 통칭되는 스포츠 겨루기의 형태 변질은 그동안 태권도계 내부에서는 큰 대회마다 논란이 된 단골 소재다.
2020 도쿄올림픽 태권도경기 남자 -68kg급 이대훈의 뒷차기 공격 장면. |
반자동으로 시작해 전자동, 여기에 2014년 전자헤드기어까지 도입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득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발바닥이 있다. 주먹 득점과 추가 기술 점수, 감점을 제외한 득점의 권한이 전자호구시스템에 이양되면서 앞발 발바닥이 견제의 의도를 넘어 점수로 전환되는 시대를 맞았다.
제기차기, 멍키킥 등의 등장과 함께 앞발끼리 서로 견제하다 상대의 앞발과 손 카바 사이를 비집고 발바닥을 ‘쑤욱’ 밀어넣어 얻는 점수가 기본 득점 패턴의 주류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몸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상대와 몸이 닿은 상태에서 상대 선수의 겨드랑이 사이, 혹은 바깥으로 골반을 틀어올린 발바닥을 솟구쳐 뒤통수에 ‘찰싹’하고 닿는 행위가 머리 득점의 주요한 패턴이 되어 버렸다.
‘발 펜싱’이라는 말은 펜싱을 모욕하는 것이고, ‘발바닥 문대기’, ‘발바닥 닿기’가 스포츠 태권도의 득점 주류로 자리 잡았다.
안면을 타격하는 빠른 앞발 머리 공격이나 돌려차기 머리 공격, 가장 화려한 뒤후리기 머리 공격은 고난도 기술이지만 득점으로 표출되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고, 오히려 발바닥을 끌어올려 상대 몸통 뒤에서 올라와 뒤통수를 건드리는 머리 공격은 득점으로 잘 표출된다.
또, 빠른 스텝으로 접근전을 시도하는 선수를 향해 무릎을 펴지도 않은 채 몸통에 살포시 대는 발등은 그 강도보다는 얼마나 확실하고, 오래 몸통에 닿았는지에 따라 득점으로 표출된다.
스텝과 스피드에 이어지는 임팩트 강한 공격 발차기보다는 앞발로 상대의 발을 막는 행태가 휑휑하고, 여기에 이어지는 발바닥 연결 동작으로 득점을 내기 수월한 방향으로 전술이 바뀌면서 이 악순환의 반복은 스포츠 태권도의 질적 하락을 오래전부터 초래되었다.
간혹 멋들어진 경기가 펼쳐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코트에 들어선 두 선수가 묵시적으로 발바닥 패턴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이다. 그러나 대부분 이기기 위한 경기에서, 특히 큰 메달이 걸린 경기일수록 앞발은 가장 효율적인 패턴이 되어 버렸고, 경기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만능키가 되어버렸다.
일례로, 지난 2015년 첼랴빈스크 세계선수권 당시 긴급하게 소집된 WT와 각국 지도자들 간담회서 한 외국인 여성 지도자는 “우리도 훈련할 때는 앞차기고 시키고, 돌려차기도 시킨다. 하지만 경기에서는 이기기 위해서는 앞발을 써야한다”고 항변한 바 있다.
이러한 스포츠 태권도의 형태로 인해 비난을 받는 것은 선수들이다. 특히 스텝과 스피드, 타격에 의한 겨루기를 선호하는 선수일수록 오히려 허무한 패배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고, 패했다는 이유만으로 질타를 받거나 앞발 패턴으로 경기를 운영하다 도매급으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심판들의 판정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도입된 전자호구시스템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 되어버렸고, 2009년 코펜하겐 세계선수권 이래 같은 문제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었다.
2020 도쿄올림픽 태권도 경기 장면. |
문제는 전자호구 업체 관계자들조차도 강도의 측정과 센서의 반응 정확성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 여전함에도 태권도 겨루기 경기의 질적 발전이 IT 기술의 발전에 수렴될 수 있다고 믿고 있거나, 혹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과감한 대안을 찾기보다는 자승자박을 인정하고 싶은 사람들이 주요 의사결정 과정의 핵심에 있다는 점이다.
IT, ICT, AI와 같은 첨단 기술은 스포츠 태권도 본연의 특이점을 외형적으로 가장 잘 구현해주는 보조적 수단일 뿐 승패를 좌우하는 본질이 되어서는 안됨에도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더 이상 전자호구의 결함을 보완하는 경기규칙의 개정만으로 스포츠 태권도의 질적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면 태권도의 특이점을 최대화시키는 경기규칙의 개정과 이에 따른 전자호구시스템의 제한된 기능을 모색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언급되어야 할 점은 이번 도쿄올림픽 태권도경기에서 드러난 심판들의 감점 일관성에 관한 문제다.
가장 도드라진 것은 잡는 행위에 대한 감점과 소극적 행위에 대한 감점이다. 도쿄올림픽 태권도경기 어떤 경기에서, 어떤 심판은 주는 잡는 감점을 다른 경기에서 다른 심판은 주지 않는다. 또 어떤 경기에서, 어떤 심판은 주지 않는 소극적 행위에 대한 감점을 다른 경기에서 다른 심판은 준다.
WT는 이번 도쿄올림픽에 선발된 총 30명의 심판을 IOC의 양성평등 기치에 따라 남녀 각 15명씩 선발했고, 대륙 분배도 고려했다. 그 외형과 형식은 역시 태권도 세계화에 일조하고 있지만 내용과 질적 측면, 특히 심판의 도덕성과 전문성도 그러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잘 사는 나라든, 못 사는 나라든 접근의 용이성을 장점으로 세계화된 태권도, 그리고, 다양한 국가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세계화된 태권도는 여타의 올림픽 정식종목과 비교해 크게 상찬받을 만한 태권도의 밝은 부분이다.
그러나 전자호구시스템에 종속되어 태권도의 특이점이 앞발 중심의 발바닥 문대기, 발바닥 닿기 패턴으로 수렴될수록 그 그림자 역시 대비된다.
2020 도쿄올림픽 태권도경기를 결산하는 ‘태권도 세계화의 명암과 한국 태권도의 딜레마’ 1편의 마지막은 지난 25일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메세 A홀에서 펼쳐진 남자 –68kg급 동메달 결정전을 마친 후 믹스트존에서 전한, 이제는 한국 태권도의 전설로 남을 이대훈의 말로 대신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원하는 태권도 룰로 변했으면 좋겠다. 선수들끼리도 토론을 많이 하는데 계속 상의하면서 발전할 것이라 믿는다. 조금 더 적극적이고 상대 공격을 받아치는 경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지금은 실점을 안 하기 위한 경기를 해서 다 비슷한 스타일이다. 보는 분들도 임팩트가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조금 개선이 된다면 태권도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 -68kg급 패자부활전 2차전 이대훈(오른쪽)과 이란의 미르하셈 호세이니. |
양택진 기자 winset7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