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겨루기보다 더 밀착해서 경기를 하는 유도, 씨름, 레슬링 선수들이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고 경기하는 상황에서, 겨루기 선수들에게만 안면 보호대 착용을 의무화하는 것은 명분과 설득력이 떨어질 전망이다.
-철저하게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경기를 하면 되지, 안면보호대 착용을 고수하는 것은 다른 유사 종목과 형평성에 맞지 않을 뿐더러 보여주기 식 ‘전시성 방역’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글=서성원 기자 / tkdssw@naver.com
“호흡하기 어려워요.”
“시야가 가려요.”
지난 달 하순, 대한태권도협회(회장 양진방, KTA)가 경북 안동에서 주최한 전국종별선수권대회 기간에 선수들과 지도자들이 토로한 말이다.
코로나 19 여파 속에서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태권도 대회가 열리는 것에 대해선 “다행”이라고 하면서도, 마우스피스를 끼고 비말(입에서 나오는 침방울) 차단을 위해 안면보호대(실리콘 소재)를 착용하는 것은 “너무 불편하고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서울의 A감독은 “경기 도중 휴식시간에 되면 선수들의 호흡소리가 거칠다”며 “마우스피스를 하고 안면보호대를 착용하면 습기가 올라와 시야를 가려 경기력 발휘에 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도자 사이에선 태권도 겨루기 경기보다 선수들이 더 밀착해서 경기를 하는 유도와 씨름, 레슬링 등은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대한태권도협회를 비롯한 대회 주최측이 태권도 선수들에게 엄격한 방역 잣대를 적용하느냐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지도자들의 지적처럼 올해 열린 유도와 레슬링, 씨름대회를 살펴본 결과, 해당 종목 선수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경기를 했다. 특히 수영은 선수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경기를 할 수 없어 수영장 안에 침방울을 내뱉을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한국실업태권도연맹(회장 장태수)이 제15회 회장기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의 안면 보호대 착용을 없애 주목을 끌었다. 지난 달 30일부터 5월 1일까지 열린 안면 보호대를 착용하지 않고 경기를 한 선수들의 경기 모습은 유튜브로 방송되어 화제를 낳았다.
이에 대해 오영주 실업연맹 사무총장은 “대회를 앞두고 열린 이사회에서 여러 이사들이 선수들의 기량 발휘에 지장을 주는 안면보호대를 하지 말자고 해서 논의 끝에 태권도 대회 처음으로 안면보호대를 없앴다”고 말했다.
이 대회에선 주심들의 시야를 가리고 피부 트러블을 유발하는 등 판정에 지장을 주는 앞가리개(쉴드)도 없애, 심판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마스크만 착용해도 방역엔 문제가 없다는 게 심판계의 중론이다.
이처럼 실업연맹이 전향적으로 선수들이 착용하는 안면 보호대와 주심이 착용하는 앞가리개를 없애자 중·고등부 지도자들도 실업팀 일반부 선수들처럼 똑같이 적용해 달라는 움직임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다른 부별보다 상급학교 진학이 더 민감한 중·고등부 선수들이 제대로 경기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안면 보호대를 착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이에 따라 태권도 겨루기보다 더 밀착해서 경기를 하는 유도, 씨름, 레슬링 선수들이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고 경기 하는 상황에서, 겨루기 선수들에게 안면 보호대 착용을 의무화하는 것은 갈수록 명분과 설득력이 떨어질 전망이다. 철저하게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대회를 열고 경기를 하면 되지, 안면보호대 착용을 고수하는 것은 다른 유사 종목과 형평성에 맞지 않을 뿐더러 보여주기 식 ‘전시성 방역’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대한태권도협회 내부도 이러한 흐름에 반응하고 있다. 김현수 겨루기 본부장은 4월 30일 “사무총장 등 집행부에게 이 같은 내용을 건의 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오는 중순 강원도 태백에서 열리는 KTA협회장기대회와 용인대총장기대회 등에서 중-고등부 선수들이 안면 보호대를 착용하지 않고 경기를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태권도지도자협의회(회장 장종원)는 조만간 KTA에 공문을 발송해 안면보호대 부작용 등 지도자들의 건의를 공식 제기할 예정이다.
한편 한국초등학교태권도연맹은 지난 달, 오는 8일부터 12일까지 경남 창녕에서 열리는 어린이태권왕대회에서 안면보호대를 착용하기로 결정했다.